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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타임 슬립'을 다룬 한국 드라마 네 편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스포일러는 배제하고 드라마 컨셉이나 큰 틀에서의 스토리 구성 및 특징에 대한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타임슬립 장르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네 편 모두 직접 감상한 작품입니다만, 드라마 <나인>은 10화까지 밖에 시청하지 못했으니 참고해 주세요.)


1. 닥터진 (MBC)



 드라마 닥터진은 일본 만화 <타임 슬립 닥터 JIN>을 한국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신경외과 의사인 주인공이 조선 말기로 타입슬립하여 흥선대원군 집권 전후의 시대를 겪는 내용입니다. 역사를 다루는 내용이기 때문에 일본 원작을 한국 작품으로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핵심 모티브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내용이 각색되었습니다. 현대의 의사가 과거로 이동하는 내용이므로 과거에서 행했던 현대 의술 등으로 인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만, 주인공이 역사에 굉장히 해박하고 최대한 역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자세로 일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야 할 사람을 여럿 살리게 됨으로써 주인공이 알던 역사와 조금씩 어긋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게 됨으로써 역사가 결국엔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설정을 통해 큰 혼란을 자제한 모양입니다. 


 드라마 닥터진은 방영 전부터 방송사가 바뀌거나 전속작가 논란 등으로 문제가 되었으며, 방영 중에도 역사 고증 오류의 문제나 출연진의 연기력 논란, 엉성한 결말 등으로 고초를 겪은 작품입니다. 결국 비교적 저조한 시청률로 마무리하게 되었고요. 비슷한 설정의 SBS 드라마 '신의'와의 이슈도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술을 활용하여 현대 의술을 선보이고, 그런 모습에 경악하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생각합니다. 



2. 신의 (SBS) 



 드라마 신의 역시 닥터진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의사가 과거로 이동하는 컨셉입니다. 하지만 닥터진과는 달리 신의의 주인공은 현대의 성형외과 의사이며,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하늘의 문'을 통해 공민왕 치하의 고려시대로 납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인공을 납치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최영 장군이라는 점이 드라마 초반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을 줍니다. 


 드라마 초반부터 닥터진과의 관계 때문에 이슈가 되었는데,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고 보니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닥터진은 주인공이 조선시대에서 현대 의술을 행하는 것이 꽤 비중 있게 다뤄졌지만, 그에 비해 신의에서는 의학적 활약의 비중이 굉장히 적습니다. 주로 공민왕과 몽골, 그리고 친원 세력들의 정치적 관계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주인공을 자신의 권력에 이용하기 위해 차지하려는 세력과 지키려는 세력의 갈등이 드라마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또한 드라마 신의에서는 비교적 사실적인 닥터진과는 달리 고려시대 등장인물에 한해 기공을 사용하는 등 판타지 요소가 포함되어 꽤 많은 시청자들이 충격을 금치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과거로 이동하는 타임 슬립 스토리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이슈인 나비효과에 대해서도 상당히 자유로운 자세를 취합니다. 보통은 시공간을 이동하는 인물들이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려하여 최대한 언행을 자제하는 것에 반해, 신의에서의 주인공은 '내가 사는 시대가 나의 시대'라는 가치관으로써 천기누설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돈과 남자를 밝히는 속물적인 성격의 강남 성형외과 출신에, '내신은 1등급이지만 이과라서 역사에는 약하다'는 주인공의 성격에 호불호가 꽤 갈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널려있는 고려청자와 공민왕의 그림 작품 등을 탐내는 모습 등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드라마 신의는 닥터진을 능가하는 역사 고증 오류의 문제로 이슈가 되었고, 무엇보다 이 작품을 연출했던 김종학 PD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한류스타 이민호의 출연과 명실상부 톱스타 김희선의 복귀 작품이라는 큰 홍보 요소가 무색해지는 여러 굵직한 이슈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러 복잡한 문제에서 벗어나 단순하게 드라마 자체만을 본다면 한 번쯤 감상해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3.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tvN)



 드라마 나인은 '향'이라는 매개를 통해 정확히 20년 전의 과거로 30분간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설정의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향을 9개를 획득하게 되므로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이 9개의 향은 네팔 히말라야에서 동사상태로 발견된 형의 유품이었지요. 그런데 20년이라는 비교적 근과거(가까운 과거)로 타임 슬립을 하기 때문에 적잖은 나비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나비효과는 연인이 조카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연인이었던 주민영이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주인공과 같은 성을 쓰는 박민영이 되었을 때 저 또한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형의 죽음과 방화범이 누구냐가 핵심 이슈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굉장히 냉철하고 두뇌회전이 빠르며 판단력이 빠른 인물이기 때문에 9번의 시간여행을 통해서 두 가지 이슈를 모두 해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마 나인은 미국 ABC 방송국에서 리메이크를 위한 판권을 구입한 것으로 한때 화제가 되었는데요. 한국 배우 김윤진 씨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지만 결국 판권만 구입하고 제작이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드라마 나인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가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2006년>를 표절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해당 소설 '알약'이라는 매개를 통해 30년 전으로 20분씩 총 10번의 타임 슬립을 할 수 있는 설정입니다. tvN 측은 판권을 구입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모티브만 따왔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원작 출판사 측에서는 표절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원작자인 기욤 뮈소가 해당 문제에 대한 이렇다 할 반응이 없어서 소송까지 번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같은 제목으로 정식 판권을 구입하여 리메이크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아마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드라마 나인을 표절한 것이라고 오해하는 일도 벌어질 듯합니다. 하지만 전후사정을 아는 사람들도 드라마 나인을 최고의 드라마로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평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4. 터널 (OCN) 



 드라마 터널은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인 화성 연쇄 살인사건에 타임 슬립을 접목시킨 드라마 입니다. 쉽게 말해 살인의 추억의 타임 슬립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 터널 역시 비교적 근과거인 30년 전으로 타임 슬립을 하게 되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터널을 매개로 시간을 뛰어 넘습니다. 주인공이 1986년의 해당 사건 담당인 10년차 베테랑 형사인데요. 30년 뒤인 2016년으로 넘어와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해당 연쇄 살인을 해결하는 스토리입니다. 극중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화성시가 아닌 화양시라는 곳입니다. 


 드라마 터널의 경우엔 주인공의 관점에서는 과거로의 이동이 아닌 미래로의 이동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첨단 문물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적잖이 충격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이 부분을 크게 부각시키진 않습니다. 주인공의 상황 파악이 매우 빠르고 범인을 어서 잡고 1986년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한 탓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특정 지역 내의 특정 사건을 목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1986년 당시 주인공과 엮였던 인물들을 30년 뒤에 마주치게 되는 부분들이 부각되는 편입니다. 큰 반전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발생하고요. 예를 들면, 30년 전에는 사건 현장만 보면 토하기 일쑤였던 강력계 막내가 30년이 지나고 강력계 팀장이 되어 있는 등의 상황이 재미있습니다. 


 주인공은 (주인공의 관점에서) 미래와 현재를 두 번 왕복하게 되는데요. 한정된 지역에서 특정 사건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비효과는 크게 벌어지지 않습니다. 단, 범인이 누군지 파악하게 되고 중간에 잠시 현재에 들렀을 때 범인에게 했던 행동 때문에, 미래의 범인의 기억이 약간 변동되는 정도입니다. 아마 범인을 잡고 피해자를 최소화한다는 내용에 무게 중심을 두기 위해 스토리가 꼬이고 복잡해지기 십상인 나비효과를 최대한 자제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비효과를 배제했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등의 허점도 있다는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