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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홍차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로 차가운 홍차, 즉 아이스티와 티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홍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도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 날씨에 뜨거운 차를 선뜻 마시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이, 더울 때 뜨거운 음식이나 음료를 마셔서 체온을 내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솔직히 땀을 흘리면서 뜨거운 차를 마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많은 홍차 마니아 분들은 아마 얼음을 띄운 아이스티를 많이 즐겨 마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평소에 찻잎을 직접 우려서 차를 마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보편적으로 티백을 이용하여 차를 우려서 마시는 분들이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듯, 아이스티와 티백 홍차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반해, 그 시초나 역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그다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17세기부터 영국에서 차에 대한 수요와 인기가 날로 증가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차의 인기는 영국뿐만 아니라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에서도 날이 갈수록 더욱 증가했고, 이후 1773년에 차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보스턴 차 사건'인데요, 아마 학창시절에 세계사를 공부하셨던 분이라면 익숙한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이 영국의 차조례에 반대해 발발한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의 차 산업과 문화에도 적잖이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잠시 차 불매운동이 발생함과 더불어 커피를 주로 마시는 라틴계 사람들의 이민 등으로 인해 차 대신 가격이 저렴한 커피의 수요가 증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커피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차의 인기는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위기를 느낀 홍차 산업은 홍차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획기적인 상품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재도약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아이스티와 티백 등의 홍차 상품입니다. 아래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904년에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 박람회(엑스포)가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인도 측으로부터 위탁을 받고 엑스포에서 홍차 홍보를 하던 리처드 블레친든이라는 영국인은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엑스포가 개최되었던 시기가 무더운 여름이어서 아무도 홍차를 마시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홍차를 뜨겁게만 마셨었는데, 아마도 미국인들은 날씨를 불문하고 무조건 뜨거운 차를 고집하는 영국인들과는 문화가 달라서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리처드 블레친든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에게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스쳤습니다. 바로, 홍차에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아이스티는 당시 엑스포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고, 그 엑스포에서 가장 히트한 상품이 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어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티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티백의 시초도 아이스티 못지않게 흥미롭습니다. 아이스티가 탄생한 해의 4년 후인 1908년에 차 수입상이었던 미국인 토머스 설리번은 고객에게 차를 판매하기 전에 홍보 목적으로 차 샘플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때 그는 작은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에 찻잎을 조금 넣는 방법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의도는 차 주머니에서 잎을 꺼내어 평소에 마시던 대로 차를 우려 마시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고객들은 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 보는 신기한 차 주머니를 그만 주전자 속에 그대로 넣어서 우려 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계기로 티백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차를 우려서 마셨던 고개들이 차 찌꺼기를 거를 필요가 없는 등의 편리함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고객들은 토머스 설리번에게 차 주머니의 생산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토머스 설리번은 차 주머니, 즉 티백(tea bag)의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발명된 티백은 끈이 달리거나 피라미드 등 여러 가지 모양의 티백으로 점점 발전하게 되었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방식 보다는 티백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스티와 티백이 탄생한 이야기를 듣고는 '미국이어서' 가능하지 않았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는 영국에서는 차에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마시거나 주머니를 이용하여 차를 우리는 행위를 미국처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영국에서도 차차 다양한 홍차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영국인이라면 다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실제로 당시 영국에서는 이를 거부하는 분위기였지만, 현재 영국의 차 소비자 중 85% 정도가 티백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반면, 미국이란 나라는 '인종의 용광로'라는 타이틀답게 다양한 문화를 가진 여러 인종들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 편리한 것을 당시의 영국인들보다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아이스티와 티백의 시작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한동안 날씨가 계속 더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모두들 시원한 아이스티 한 잔 마시면서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시길 바랍니다.